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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택'이란? 다윈도 힘들어 했던 연구 2가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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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7회 작성일 25-03-2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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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해요. 어떤 분들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불편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다윈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그와 깊이 알아가는 과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제가 ‘다윈적 사고’에 깊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감염내과 의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되는데, 왜 굳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제 이야기가 철저히 진화적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가 다윈에 대해 잘 모르는 사회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과학책들 중에서 진화론적 설명이 담긴 책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대놓고 "이건 진화론적으로 설명된 거다"라고 하지 않더라도, 배경 이론은 진화론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이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진화적인 설명에 익숙해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진화론적 사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훨씬 쉽게 받아들이실 분들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저는 바이러스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적인 감염병 질환 연구자는 더더욱 아니에요. 제가 공부한 기생충학과도 조금 관련이 있을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보면서, 왜 이런 식으로 전개되고,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며, 이 상황을 다르게 보면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 하는 것들이 보였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제가 다윈적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더라고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다윈의 렌즈를 끼고 문제를 보면 보이지 않는 흐름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아직 다윈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릴 적 저는 문학청년이었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해본 적은 없지만, 찬바람이 불면 글을 쓰고 싶어 하던 시절이 있었죠. 어머니는 종종 ‘벨상 문학 전집’ 같은 책들을 사주셨습니다. 그 책들 중에는 소설이나 희곡뿐만 아니라, ‘꿀과 개미’ 같은 짧은 수필도 있었습니다.

그 수필은 러시아의 추운 겨울, 벌꿀을 태우던 불 속에 개미 집이 있는지 모르고 나뭇가지를 넣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불 속에서 개미들이 탈출하는 모습, 그리고 목숨을 구한 개미들이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 애벌레를 구하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죠. 개미의 희생정신은 어렸을 때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가솔 선생님의 질문은 이랬습니다. "개미는 왜 자기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그렇게 희생적으로 사는가?" 이 질문을 들으며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개미, 참 신기하네"라고 생각하고 넘겼었죠. 물론 어렸을 때 개미를 괴롭혀 본 적은 있어도, 개미를 열심히 연구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 들어갔지만, 저는 원하던 학과에 가지 못해서 대학생활이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반전이 생겼고,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되었는지 믿기 어렵더군요. 학점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제가, 4학년 내내 학점 관리를 통해 겨우 3.0을 넘겨 유학길에 오른 것이니까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동숭동 문리대에서 관악산으로 이사 간 세대였습니다. 그때는 학생 인권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시절이었어요. 과목이 없어지면 대체 과목을 만들어 줘야 하지만, 그런 배려가 없었습니다. 저는 4학년 때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최대한으로 수강했고, 좋은 성적을 받아 겨우 유학 준비를 마쳤습니다.

유학을 간 곳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이었습니다. 석사 과정에서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동물의 왕국’을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자소서에도 "동물의 왕국을 연구하고 싶습니다"라고 썼을 정도였죠.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니 교수님들은 저를 골려 먹기 시작했습니다. "너 학교 정보 좀 똑바로 보고 왔니?"라면서요.

당시 저는 생태학이나 진화생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였고, 단순히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연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수강편람을 뒤지다 보니, 축산학과에 있는 소시오바이올로지(Sociobiology, 사회생물학)라는 과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부터 흥미로웠죠.

첫 강의 날, 교수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왜 개미들이 자기 희생을 하며 사회를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라는 주제로 수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학문이 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과서는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E.O. 윌슨이 쓴 "사회생물학"이었고, 부교재로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회생물학의 매력에 빠졌고, 그 순간이 제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말로는 두툼한 책으로 보이지만, 영어 원서는 비교적 얇은 편입니다. 이 책을 꼭 읽으라는 추천을 받아, 학교 앞 서점에서 샀습니다. 제가 평소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 책을 완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였어요. 점심 전에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저녁도 건너뛰고 밤새워 읽다 보니 새벽에 동이 틀 무렵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당시 영어가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감동이 엄청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사회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왜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을까? 왜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까?—에 대해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놀랍도록 정리되면서, 무언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경험은 정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흥분과 감동의 연속이었죠.

새벽에 책을 덮고 베란다로 나갔더니, 자욱한 안개 속에서 서서히 세상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 책을 통해 제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저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꾼 책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더불어 과학 분야에서 항상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이론은 윌리엄 해밀턴 교수님의 논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1964년에 무려 52페이지 분량의 두 논문을 발표하며 진화생물학에 큰 획을 그었죠. 하지만 논문은 수학 공식들로 가득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수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 논문을 완전히 읽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브라운백 세미나라는 캐주얼한 학술 토론 모임에서 이 논문을 읽고 논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논문을 읽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인용 논문만 읽은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어렵게나마 원문을 다 읽고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그런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논문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가 단순히 영어에 서투르고, 발표에 소극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노력하고 원문을 읽어내는 끈기가 저를 차별화시켰다는 점입니다. 그 경험은 제 학문적 성장과 자신감을 크게 북돋아주었죠.

다른 사람들이 논문을 다 읽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던 제가 논문을 읽었다고 하니 다들 놀라더군요. 그러더니 교수님이 시계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 네가 이 논문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얼떨결에 제가 맡게 되었죠.

영어가 서툴렀던 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래도 칠판에 수학 공식을 쓰면서 논리를 설명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하겠다고 했고, 일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결국 발표 당일, 세미나실에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방 한구석에서 사람들로 꽉 찬 공간을 보며 긴장되었지만, 발표를 마쳤습니다. 이후 소문은 더 커졌고,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제 이름이 회자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학과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인류학 교수님들 역시 해밀턴 교수님의 논문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기에, 제가 논문 강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영어도 서툴고 유학 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제가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된 거였죠. 그날 이후로 모든 일이 순조로웠습니다. 교수님들께서도 저에게 호의적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며 제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적도 좋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해밀턴 교수님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성적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결국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해밀턴 교수님과의 일화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 교수님은 사회적 진화와 관련된 포괄적합도 이론을 만들고 연구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제가 교수님 댁에서 머물며 함께 토론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정말 꿈만 같았어요. 교수님은 수줍음이 많으셨지만, 대화 중 항상 깊이 있는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칠판 끝까지 수식을 채우면 옆에 있던 칠판을 끌어와서 계속 설명하셨던 모습도 생생합니다.

어느 날, 교수님과 점심을 준비하며 함께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바르다가 떨어뜨리는 실수도 있었고, 다소 서툴렀던 교수님의 모습도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대 생물학의 거장이었고,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준 분이었습니다.

제가 해밀턴 교수님 밑에서 학문을 이어가던 중, 2000년에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급성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연구실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분과의 만남과 경험이 제 인생을 바꿔 놓은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울프 윌슨 교수님 밑에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개미 박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개미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민벌레라는 곤충을 연구했었습니다. 윌슨 교수님의 연구실은 하버드 박물관의 비교동물학 연구소 건물 4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연구원들과 대학원생들이 개미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실은 마치 개미의 왕국 같았고, 그곳에서 연구원들은 개미를 기르며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미 연구가 아닌, 흰개미와 가까운 관계를 지닌 민벌레의 사회적 진화를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개미나 벌의 사회적 행동은 해밀턴 교수님의 이론으로 이미 많이 밝혀졌지만, 흰개미와 같은 곤충의 사회적 진화 과정은 아직 명확히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흰개미와 사촌 격인 민벌레를 통해 중간 과정을 살펴보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결국 윌슨 교수님을 설득해 연구를 허락받았고, 당시 이 분야에서는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던 덕에 자연스럽게 세계 1인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민벌레에 대한 논문을 쓰며 연구를 이어갔고, 미국 곤충학 학회에서 민벌레 목(chapter)에 대한 집필 요청을 받았습니다. 비록 한국에 돌아온 뒤 연구를 잠시 접었지만, 여전히 제 연구가 학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남들이 다 하는 연구가 아닌, 내가 좋아하고 독창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개미 연구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고산지대에서 우연히 특정 개미 종을 발견하면서, 개미 연구가 저를 다시 끌어들였습니다. 개미들은 흥미롭게도 여왕개미들끼리 동맹을 맺어 집단을 형성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종이 다른 여왕개미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전에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독특한 현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저를 깊이 매료시켰고, 이 연구를 이어간 후배 연구자와 함께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제 연구는 다윈의 두 가지 고민, 즉 암수 간의 차이와 사회적 행동의 진화를 탐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다윈은 평생 동안 암컷과 수컷 간의 차이를 설명하려 노력했고, 자연선택 외에 성선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개미와 같은 곤충의 사회적 행동은 다윈에게 큰 난제였으며, 이를 해결한 것은 해밀턴 교수님의 포괄적합도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계는 이 이론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윌슨 교수님은 후에 해밀턴 이론이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하며 집단 수준의 자연선택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발표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학계에 큰 논란이 일었고, 다양한 반박과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밀턴 교수님의 이론을 지지하지만, 집단 수준의 자연선택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제 연구는 곤충의 사회적 진화와 성선택 이론에 기여해왔으며, 지금도 학문적으로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수학을 잘 못해도 진화생물학은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입니다. 물론 수학을 잘하면 훨씬 강력한 연구를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연구를 선택해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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